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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산- 가재 붕어 개구리 그리고 이무기모셔온 글 2020. 10. 22. 12:53
"제 아들이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 못난 이 어미 탓이고
잘 가르치지 못한 부모의 죄입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한 아주머니가 부대원들 앞에 섰다.
어깨는 흔들렸고 가는 두 다리는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는
'중죄'를 저지른 어느 군인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옆에는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었고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이 그 뒤에 서서 매서운 눈으로
부대원들을 노려보았다.
이것은 내가 아는 어느 가재의 이야기다.
병장 박OO, 그는 평민의 아들이자 나의 6개월 고참이었다.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이었던 그는 부대 밖 어느 여인과
유치찬란한 편지를 주고 받으며 남몰래 사랑을 키웠고
마침내 그 결실을 맺고자 5.56mm 소총 탄두를 녹이고
갈아내 수제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하겠다는 큰 뜻을 품게 된다.
그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어느 날,
그의 마지막 사격이 다가왔고 사로에 오른 그는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레 지급받은 km193 보통탄의
탄두를 떼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0발 중 19발의 사격을 마친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는 탄두를 건빵주머니에 흘려 넣었는데,
결국 하루도 안되어 발각되고 만다.
여기서 그의 항변을 들어보자.
"어차피 사격장에 가면 널린 게 탄두다.
나는 그저 멀쩡한 탄두가 필요했을 뿐이었고
내가 쏴서 날린 탄두나 미리 빼서 챙긴 탄두나
버려지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내 죄는
총알 하나 줏어서 쓰레기 같은 목걸이나
만들려고 방아쇠 한 번 안 땡긴 것 뿐인데,
아 그게 무슨 죽을 죄라도 된다는 말이더냐!"
택도 없다.
군법은 지엄한 것이다.
각각의 행위가 처벌조항이 되어 군법에 적시되고
군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죄다.
그 탄알이 연인에게 선물할 목걸이를 제조하기 위함이던가.
사격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키라 지급한 탄알이다.
그러므로 변명은 필요없는 것이다.
결국 그는 군용물 절도의 중죄를 저지른
범법자 신세가 되었고 헌병대로 이송되기 직전,
모친을 부대로 소환하여 부대원 전체 앞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하는 이른 바 '인민재판'에
선다면 구속은 면할 것이며 가벼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중대 간부들의 회유에 굴복했다. 군대판 플리 바게닝인 것이었다.
구속될 위기에 처한 아들의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국토를 사선으로 가로질러 달려와
중대원들과 간부들 앞에 죄인의 어머니가 되어 섰다.
정치인도 아니었고 장차관급의 고위 인사도 아니었던
그의 평범했던 어머니는 보좌관의 전화 한 통으로
사고를 수습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결국
아들뻘 되는 부대원들과 조카뻘 되는 간부들 앞에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게 되었다.
그 덕에 병장 박OO은 구속을 면하였지만
한 달간 무장구보에 임하는 처벌을 받게 되었고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어느 붕어의 이야기이며 여기에는
과거의 내 자신과 나의 어머니가 있다.
박병장의 '탄두 절취사건'이 희미하게 잊혀질 무렵,
뒤이어 병장이 된 나는 달력에 D-day를 새기며
하루하루 전역일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탄두 절취사건의 명성을 뛰어넘는 엄청난 사건을
몸소 터트렸으니 그것은 이른 바 '간장계란밥' 사건이다.
산악중대의 야심한 밤, 상황근무를 마치고
대기에 임하려던 나는 병장 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극심한 허기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사병식당에 침투해
냉장고에 있던 계란 두 알과 보급 간장 그리고
먹다 남은 밥을 신들린 듯이 볶고 지져대어
한 그릇의 간장계란밥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리고 보슬보슬한 계란과 볶은 간장의 풍미를
한껏 느껴보려던 그 순간, 마침 순찰중이던
당직사관이 사병식당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날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그는 공식적인 부대 급식이 아닌 개인적 취식을
문제삼았다. 간장계란밥의 고소한 풍미를 지적했고
특히 내가 소비한 계란 두 알에 몹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 그 계란이 과연 너의 사유재산인가
국민의 세금인가하는 문제를 골자로 하여 공세를 퍼부었다.
"아 그럼 군인은 취사병 없으면
굶어 죽어야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나의 일갈에 비극은 실체와 영향력이 되어 다가왔다.
격분한 당직사관은 내 간장계란밥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지려 했고 나는 이미 볶은 것이니 먹긴 먹어야 한다며
맞섰다. 그리고 빼앗으려는 손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손이
오가며 몸싸움으로 번졌고 자연스럽게 나는 하극상의
중범죄를 지은 죄인으로 신분을 갱신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간장계란밥은 식당 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마치 내 앞날을 보는 듯했다.
상황은 즉각 보고되었다.
병장 조은산은 '군용물 절도' 에 '항명'의
혐의까지 더해 군통신망을 타고 내리며 전파되었다.
군형법상 모두 사형이 가능하다. 나는 나선을 그리며
내 심장을 뚫고 진입하는 5.56mm 소총탄을 상상했다.
간장계란밥 때문에 죽어야 한다니..
이제 나의 항변을 들어보자.
"나는 돈 8만원 받자고 군대에 끌려왔다.
애시당초 배고프지 않게 해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거늘 무슨 타조알도 아니고
계란 두 알 해봐야 얼마나 한다고 이 난리더냐.
그렇다면 내 죄는 먹고 살자고 지지고 볶은 것 뿐인데,
아 내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었단 말이더냐!"
역시 택도 없다.
당직사관의 조치는 정당했다. 그는 장교로서 자신의 판단에
충실했고 그는 그럴만한 권위와 그래야 할 책임이 있는
군의 장교였다. 그는 적시된 군형법을 근거로 내 앞에 섰고
나는 나의 철없는 배고픔으로 그와 맞섰다.
근거와 감정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계란 두 알과 간장의 고소한 풍미를 문제 삼아 권위를 내세운
그의 옹졸함을 탓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군이다.
그것이 군율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따라야 할 것이었다.
엄중히 책임을 묻는 고통의 시간이 다가왔다.
헌병대로 이송되기 전, 나 역시 박병장과 마찬가지로
인민재판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중대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사병이 장교에게 대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중대장은 길길이 날뛰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부대로 소환했다.
어머니는 구속될 아들의 처지를 행정관에게 전해듣고
크게 놀라 주저앉았다. 그리고 급히 몸을 재촉해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때론 뛰고 걸으며
겨우 부대에 도착했다. 그러던 와중에 몸이 달았는지
길바닥 위에서 크게 넘어지셨고 눈가에 피멍과 핏자국이
선명한 채 아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휴가가 유독 밀렸었다.
10개월 만에 뵙는 나의 어머니였다.
"우리 아들이 엄마가 많이 보고싶어서 그랬나보구나"
어머니의 첫 마디에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리움,
미안함과 서러움이 일순간 터져나왔고 나는 무너졌다.
나는 토하듯이 울었다. 가슴을 치며 울었고
사로잡힌 짐승처럼 버둥거렸다. 목구멍 안쪽에서
끌려나온 울음은 심장 마저 토해낼 듯 깊었다.
어머니는 젊은 소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울음을 이어받았고
두 손을 비비며 진심을 다해 애원했다.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는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군복 바지를 잡고 늘어지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그제서야 용서의 뜻을 전했다.
어머니의 무릎에는 흙이 묻어 날렸고
나는 눈물을 닦아 흙을 털어 내 죄를 씻었다.
그렇게 나는 구속을 면하였고 마찬가지로
한달간 무장구보에 임하라는 명을 받았으며
그렇게 '간장계란밥'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된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그러나 참담했던 그 날의 기억은 년도와 일자까지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 날의 불효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요즘 어느 어머니와 어느 일병의 이야기로
나라가 통채로 들썩이는 듯하다.
여당의 당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직 법무부장관이자
권력의 핵심에 위치한 어느 어머니가 있고,
19일간의 병가를 끝으로 부대에 복귀해야 했으나
석연치 않은 처리 과정으로 난무하는 막말과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선 어느 일병이 있다.
이들을 '용과 이무기'에 빗대어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이 이무기의 항변은 들어볼 필요도 없다.
이미 177석의 거대 여당이 앞다퉈 그의 항변을
대신하고 있다. 월급 8만원의 고단함과 굶주림을 읍소하고
연인에게 선물할 탄두 목걸이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가재와 붕어의 초라한 자기변명과는 차원이 틀린,
국가 단위의 변명인 것이다.
말과 말이 부딪히니 새로운 언어가 생겨났고
카톡휴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관념과 관념이 부딪히니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는데,
졸지에 이 일병은 안중근 의사로 환생했다.
그리고 상식과 상념이 부딪혔다. 상식은
거대 여당의 상념 앞에 깨어져 흩날렸다.
재미있다. 추상같은 군법의 지엄함 앞에 가재, 붕어
따위 미물들은 소총 탄두를 뽑아내고 계란을 볶아대다가
제 부모를 끌어내 인민재판을 세우고 무장구보를 도는데
미귀한 장관의 아들을 비호하는 175인의 결사대라니..
아쉽다. 내가 만일 장관 어머니를 뒀다면
계란을 볶았던 건 내가 아닌 당직사관이었을 것이다.
병장 조은산의 하극상이 문제인가.
보좌관을 부려 사병의 신분으로 장교를 겁박했을 것이다.
병장 박OO의 5.56mm 소총탄 탄두가 문제인가.
155mm 포탄 탄두를 깠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결국 그의 군무이탈과 주변인들의
여러 혐의에 대한 불기소 처분으로 일단락되었다.
동부지검의 지휘라인은 이미 친정부 인사가
장악했고 그들의 수사의지는 이미 8개월 간
증명되었다. 또한 백번 양보해 기소에 부쳤던들
대법원 또한 민변에게 접수된지 오래인데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가지,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검찰은 들어라.
'무슨 말인가. 휴가처리가 됐다. 어떤 착오나
오류가 있는 것 같다. 승인권자에게 구두승인을 받았다.
군무이탈죄로 처벌되지 않게 신속히 처리해달라.'
이 말은 결코 어렵지 않은 말이다.
그리고 정당히 휴가를 연장했고 자신 또한 그렇게
알고 있다면 미귀 사실을 알리는 당직사병에게
응당 되물어야 할 말들이며 온전한 정신과 상식을
갖춘 성인이라면 이미 23일 전화를 끝으로
25일의 부대복귀 종용은 없었을 것이다.
그대들은 이러한 상식의 논리에 따라
장관의 아들을 신문해 추궁하였는가?
정상적으로 휴가를 연장한 이 시대의 보편적 군인이라면
총 3번의 복귀를 종용하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첫 전화에서 이미 오류를 수정하고 누락을 채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의 이유를 추궁하고
진술과 진술 사이에 모순점을 찾아 파고드는
유능하고 진실된 수사관은 검찰에 없는가?
사건 관계자들을 거짓말 탐지기에라도 올렸는가?
간접증거라도 되어 진술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
이에 대한 그들의 의사라도 물었는가?
동의와 비동의 사이에서 심증이라도 얻을 수 있다.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를 이끌어낸 판례가 넘쳐난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눈물만으로도 피의자의 강간죄가 성립한다.
그들의 기소와 공소유지는 누가 한 것인가?
장관의 아들을 기소하기 위해서는 직접증거가 필요하고
평민의 아들들은 간접증거와 정황증거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것이 검찰의 공정이고 법무부의 정의인가?
구두승인을 냈다고 진술한 승인권자의 진술과
육군의 행정시스템과 문서화된 사실을 근거로
복귀 종용을 한 당직사병들의 진술 중 무엇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검찰은 프로세큐터인가, 폴리세큐터인가?
법무부의 영문약자 MOJ는 Ministry of Juvenile 인가?
휴가 승인을 받고도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당직자에게
말 한 마디 스스로 못해 보좌관이나 찾아대는
철부지 일병 하나가 법무부의 존재 이유인가?
자, 이제 개구리가 남았다. 개구리는 누구인가.
멀리 볼 필요 없다. 바로 그대들이다.
병장 박OO과 병장 조은산과 같은
평민의 부모이자 평민의 자식인 개구리.
정해진 휴가일수를 모두 채워 부모님께 작별의 인사를
올리고 다시 귀대길에 오른 열차 안의 슬픈 개구리.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무거운 소총을 들고 군장을 꾸려
끝이 없는 전술도로를 말없이 걷던 고독한 개구리.
만천하에 벌어지는 권력자의 비위에도 지지자라는 이유로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려 드는 맹목적인 개구리.
모두 그대들이다.
내 블로그의 댓글창은 언제나 열려있다. 만일 이 글이
기사화된다면 포털사이트 뉴스란의 댓글 또한 가능할 것이다.
용과 이무기 따위의 이야기는 이제 불기소로 끝났다.
그러므로 나는 개구리들의 이야기가 듣고싶다.
개구리의 공정과 개구리의 정의와 개구리의 군시절을 말이다.
광화문에 모여 개굴개굴 울어댈 수 없으니
댓글이라도 달아 울어야하지 않겠는가.
기다리겠다.
이천이십년 구월 말일
塵人 조은산이 또한 개굴개굴 하였다.
[출처] 가재 붕어 개구리 그리고 이무기|작성자 goodmountai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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