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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주인이 도둑
    내가 사는 이야기 2022. 9. 5. 17:00

    병원의 기기를 수리하는데

    회사에 있던 부품은 고장 나서  못 쓰게 되었고

    나머지 재고를 가지고 있던 이 부장이 올라와서 기기를 고쳤다.

     

    서울 올라온 김에 영통에 있는 병원에  동행하는 차 안에서

    이 부장은 강아지 얘기를 했다.

     

    이사하느라 며칠 지인에게 강아지를 맡겼다가 찾아왔더니

    자기를 버리는 줄 알고 그러는지 애교가 엄청 늘었다고.

    그리고 이런 얘기도 했다.

    이번에 올라오려고 찾아보니 부품이 안 보이고 현미경도 안 보인다고.

    집이 좁아서 박스에 그대로 있는 것들도 있어서 

    박스에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사할 때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고.

     

    사진으로 본 이 부장의 좁은 원룸

    부품이며 피시 수리에 필요한 도구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천장에서 바닥으로 연결한 선반에도 물건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 

    일 보고 KTX를 타고  내려간 이 부장이

    10시 전화를 걸어왔다.

    강아지가 배변패드가 아닌 곳에 배변을 했고

    신발 자국이 있다고.

    도둑이 든 것 같다고.

     

    어머나 저런...

    회사의 부품들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뭘 도둑맞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나도 같이 걱정을 했다.

     

    112에 신고를 하고 

    집안에 설치된 홈캠을 돌려본다고 했다.

    이 부장은 강아지 혼자 두고 며칠씩 출장을 다니기도 해서

    홈캠을 휴대폰으로 보며 강아지와 대화를 하는 것을 지난겨울에 봤었다.

     

    다시 연락이 왔다.

    오전 10시 15분에

    발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현관 앞에서 컹컹 짖던 강아지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고

    짧은 머리의 남자 노인이 책상에 있는 종이컵을 녀석에게 던졌고

    뒤돌아 나가던 노인이 다시 들어와서 병을 던질 듯한 포즈를  취하니

    강아지는 자지러지듯이 울어댔다.

     

    세상에나

    그 노인은 다세대 원룸의 건물주란다.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으니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되면 그렇게 드나들었던 것이다.

     

    누군가 다녀간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 많았다고

    믹스커피도 없어지는 것 같았는데

    이 부장이 보내온 영상 속의 그 노인의 반팔 점퍼 주머니는 터질 듯이 빵빵했다.

     

    이 부장이 이곳으로 이사한 지 아직  두 달이 안 되었는데

    무섭고 기분 나빠서 못 살겠다고

    이사비용 청구해서 이사 가야겠다고.

     

    112에 신고한 다음날 새벽 6시에  집주인이 전화해서 

    집으로 오겠다고 하기에 안 만나겠다고 했단다.

     

    이 노인네 왈

    개가 짖어서 들어와 봤다고...( 이게 뭔 개소리...)

     

    그 노인의 집에 가면 이 집 저 집에서 훔친 물건들로 가득할지 모르겠다.

    아니 들킬까 봐 그새 다 가져다 버렸을지도 모른다. 

     

    개는 그 노인을 알고 있기에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짖어댔던 것이다.

     

    이번에는 종이컵을 던졌지만

    먼저는 다른 것을 던졌겠지.

     

    이 부장은 회사일 외에

    피시 수리로 돈벌이를 하는데

    수리하러 온 손님을 보고 강아지가 하도  짖어대서 대화가 불가하단다.

    수리업도 못 하겠다고 걱정을 하고 있기에

     

    놀란 강아지 진정시키는 방법을 찾아서 

    보내줬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것 같다.

    마스터키를 가진 집주인이 사람 없을 때 드나든다는 말을.

     

    도어록 그대로 쓰면 불안하니까 교체하라는 경찰의 조언을 듣고

    현관문 잠금장치를 교체했다.

     

    문제가 발생했던 그날은

    도어록의 건전지 다 꺼내놓고

    안에서 보조 걸쇠도 하고 잤단다.

     

    이사비용으로 120만 원 들었다고 했는데

    저 노인데 뒤로 넘어가겠네.

     

    곱게 늙을 것이지

    어쩌자고 남의 집을 무단침입을 일삼는지

    세입자가 사는 집은 다 내 집이고 다 내 물건이라는 생각일까?

     

    이 부장은 강아지 진정시키느라

    온 맘을 다 쓰고 있다.

     

    가난한 집에도 도둑맞을 게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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