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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숫가루와 오렌지 주스내가 사는 이야기 2022. 7. 29. 11:44
이렇게 더운 날 움직이는 것은
죽으려고 용쓰는 것이다.
목에 넥밴드 선풍기를 걸고
그래도 덥다고 전철을 타면 천장을 쳐다보고 바람이 나오는 곳에 가서 서 있게 된다.
출근길
5호선 전철을 타고 올림픽공원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요리 동영상을 보느라 역을 지나쳐 오금역에 내렸다.
예전 같으면 오금역 그 높은 계단을 걸어서 지상으로 나왔겠지만
요즘은 어딜 가나 승강기 있는 위치를 찾아다니며 이용하고 있다.
그제 마트에서 샀던 미숫가루를 개봉했다.
계란 거품기로 풀면 잘 풀어질 것이라고 본 기억이 나서
해봤더니... 컵 밑바닥 둥글면에 붙어 있는 미숫가루는 수저로 저어야만 했다.
아침부터 커피가 아닌 미숫가루라니,
어린 시절 우리 집 부엌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고
그 항아리에는 흑설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덥고 고단하면
엄마는 그 진한 갈색 설탕물을 스텐 국그릇에 타서 줬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날
보온병에 오렌지 분말가루를 타고 얼음을 넣어서
학교에 가지고 가서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바로 드실 수 있게 교탁에 올려놨었다.
그 보온병은 옛날 영화에나 나오는 다방 레지가 들고 다니는 빨간 멕스웰 하우스.
병, 캔 그런 음료가 많던 시절이 아니었다.
왜 분말주스를 드렸었을까 생각해보니
넓적한 사각병에 들었던 훼미리 주스는 그 이후에 나왔다.
기혼의 풍채가 큰 박 응양 선생님은 영어를 가르쳤다.
음료를 드린 그날 이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를 예뻐라 해서
음료를 준비해서 드렸던 것 같다.
더위 때문에 아침부터 마셔야 했던 미숫가루 음료가
오래된 추억을 불러왔다.
선생님의 소식은 모른다
한민자 선생님께 여쭈어보면 혹시 아실까?
현재 불행하면 지난날을 그리워한다는데
내가 지금 그런 것일까?
모든 지난날들이 사무치게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