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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선 출근길
맞은편에 앉은 오십이 넘어 보이는 허름한 차림의 두 남녀.
두 사람 똑같은 베이지색 마스크를 썼는데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내가 가진 마스크를 주고 싶어 져서
가방을 열어 마스크가 들어있는 지퍼백을 보니
새 마스크가 5개 있다.
두 개를 오른손으로 집고 망설인다.
마스크 드려도 될까요?
이 마스크 써 보실래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적당한 말이 없다.
마스크 내밀었다가
<날 거지인 줄 아냐>고 대들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에
가방에 넣었던 손을 뺐다.
올림픽 공원역에서 내가 내리도록
그분들은 내리지 않았다.
마천까지 가시나?
그리고 다음 날
옅은 분홍색 마스크를 하고 여자 혼자 앉아있다.
어려운 형편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은 맘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자리에 앉다 보니 그녀 옆에 앉았다.
맞은편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뭐라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녀를 쳐다보던 남자가 오른쪽 끝쪽으로 이동했다.
정신이 좀 부족한가
관심 두지 말자하고 펼친 신문을 읽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남자 둘이 그녀가 앉은자리 옆 문으로 타서는
빈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둘이서 대화를 했다.
그녀가
그 두 사람을 향해 손짓을 하며 또 뭐라고 하니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그녀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왜 저러지.
눈은 신문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그녀와 두 사람에게 가 있었다.
그녀는
빈자리가 있으니 저기 앉으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까 그 남자에게도?
분홍색 임산부석에 앉아서
애들 그네 타듯이 다리를 흔들흔들하는 그녀는
고운 심성을 가졌다.
결코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내가 실수할 뻔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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