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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나의 해방일지> 재방송
내용이 심상치 않아서 누구의 작품인가 찾아보니
<또 오해영>과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다
역시네.
경기도 남쪽, 수원 근처 산포 시(가상의 지명)에서 사는
염미정(김지원) 창희(이민기) 기정(이엘) 삼 남매의 이야기.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한 참을 들어가야 있는 시골집.
부모님은 대파 농사도 짓고 마당 한쪽 커다란 창고에서는
주방 싱크대를 만들어 판다.
그 집에서 농사도 돕고 싱크대 만드는 것도 돕는 구 씨(손석구)는
무슨 사연인지 매일 술을 달고 산다.
염 씨(천호진)네 남매들은 서울에서 밝을 때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밤이 되는 매일 반복되는 장거리 이동에 지치고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삶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푸념도 한다.
집이 멀어서 동호회에 참여할 수 없는 미정은
집을 묻는 동료에게 산포시라고 얘기하고 꼭 수원 근처라는 말을 덧 붙여야만 했다.
둘째 창희( 편의점 본사 대리)의 전 여자 친구는 경기도를 흰자, 서울을 노른자로 표현한다.
경기도는 서울을 감싸고 있다고.
스스로를 촌스러움의 경계에 있다고 여기는 창희는
이별의 순간에 여자 친구가 한 말 "견딜 수 없이 촌스러워"에
모욕감을 느낀다.
첫째 기정( 리서치회사 팀장)은 회사의 박 이사가 모든 여직원과 사귀었으면서
본인은 건너뛴 이유가 뭐냐며 예쁘지는 않지만 매력은 최고인 자기를 무시한다고
혼자 투덜댄다.
막내 미정(카드회사 계약직 디자인 담당)은 전 남자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출을 떠안은 한심한 자신을
어렸을 적 '들키지 말아야 할 20점짜리 시험지'.라고 생각하고
그놈은 도로 전 여자 친구에게 돌아갔다는 말을 친구에게 듣게 되고
꾹꾹 참고 참았던 미정은 결국 폭발한다.
술 없이 하루를 지내지 못하는 구 씨에게 "나를 추앙해요"라고 제안한다.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비록 염씨네 집 일꾼으로 일하지만 그가 그냥 일꾼이 아니란 걸
미정은 안 것 같다.
추앙이라는 말의 뜻을 그녀가 간 뒤 찾아보는 구 씨
추앙 :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삼 남매가 회식이라도 있어 버스가 끊기는 늦는 날이면
택시비를 절약하기 위해 같이 타고 들어오고
똑 같이 나눠서 낸다.
저 정도면 경차 하나 사서 출퇴근 같이해도 될 텐데 싶은 내 생각인데
여태 그 불편을 견디다가
삼천 원이면 출퇴근 가능하다는 중고 전기차를 사겠다고 아버지께 허락을 구하다가
오래전 자동차 할부금 못 같아서 신용불량자 될 뻔했던 아들을 소환하는 아버지는
불허한다.
아들은 그건 옛날이고
지금은 안 그런다고
드라마 속의 얘기는 내 얘기 같고
내 이웃의 얘기 같다.
그래도 내가 서른 즈음에는 저렇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염씨네 삼 남매가 어떻게 산포시에서 해방될지 기대된다.
동 시간에 TVN에서는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가 방송된다.
그 드라마도 재밌을 것 같다.
이병헌에 차승원까지 출연진이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해방 일지를 응원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