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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사무실을 나서다가 자그마한 체구의 그분을 봤다.
육십은 넘었지만 칠십은 안 되어 보였다.
건물 입구 왼쪽에 신문지와 박스 내놓은 것을 그분이 수레에 담고 있었다.
그 후로
신문지와 박스가 모여지면 그분이 언제 건물 앞을 지날지 몰라서
2층 복도에서 주차장 쪽을 자주 내다봤다.
건물 앞에 내놓으면 누가 가져갈지 모르니 내놓을 수 없었고
난 꼭 그분에게 드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분이 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것을 봤고
기다리시라 해놓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폐지와 박스를 그분께 드리면서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폐지가 모이면 연락드리겠다고.
그렇게 연락처를 받았고
기기에서 나오는 소모품인 무정전 전원장치 배터리와
기기 수리하면서 나오는 철물 등도 모아서 드렸더니
고물상에서 배터리를 아주 좋아한다며
폐지 값보다 많이 쳐 준다고
가져가실 때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셨다.
어느 날은 곤지암 물류창고에 기기 점검하러 갔다가
옆 창고를 정리하는 분께서
고급 가루세제를 두 개나 주셔서
사무실에 가져왔다가 하나는 그분을 드리기도 했다.
고창 고구마 15Kg를 사무실로 주문했을 때에도
그분과 나눠 먹었고.
사무실 이사하면서 박스에 담아뒀던 오래된 경영서적 두 박스를
대표님 안 계실 때 그분을 불러서
대여섯 권 남겨두고 다 줘버렸다.
(당근 마켓에 올려서 팔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대표님은 아직도 내가 책 버린 것을 모른다)
건물 지하에 자전거 전시장이 들어온 이후로
자전거를 포장했던 크고 두꺼운 박스가 하루에도 몇 개씩 나왔고
그걸 보면 다른 분이 가져갈까 봐서
그분께 전화를 했다.
"자전거 박스 많이 나왔다고 어서 가져가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라는 대답.
어제 치과에 가면서 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자전거 빈 박스가 많이 보이기에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이 나온다.
바쁘신가 싶어서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문자를 남겼다
자전거 박스 많이 나왔습니다.
얼른 가져가세요.
그리고 다시 6시쯤 건물로 들어오면서 보니 계단에 있던 박스가 안 보이기에
가져가셨나 보다 했다
그런데 오늘 오후 받은 문자에
<여사님 제가 4월 20일 미국 뉴욕 딸 집에 와 있습니다.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뉴욕이라는 부티나는 도시에 딸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동시에
거기서 살고 다시 안 오시려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문자를 보내면서
수레를 끌고 파지를 주우러 다니셔서 형편이 어려운 분(?)으로 짐작했던 것을
접어두고
그분이 뭔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고.
<좋은 곳 가셨네요.
다시 오시거든 사무실로 오셔서
미국 얘기도 들려주세요. ^^>
<예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게 아니었네.
집에 가만있는 것보다 활동을 하신 거네.
사람 함부로 낮춰보지 말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