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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의 고무가 한쪽으로 기울어 닳아서
회사 부근 구둣방 부스에 고무갈이를 맡겼다.
얼마인가요?
8천 원입니다!
작년에 내 구두의 굽을 갈아준 그분이 아니다.
족히 육십은 넘어 보이는 이분은 키가 작다.
전에 사장님은 키가 크셨고 오십대로 보였으니
사장님이 바뀌 셨던 거네.
일하다 보니 7시가 넘었다.
어두 컴컴해진 도로에
구둣방 아저씨가 있을 리 없다.
운동화를 신고 퇴근하면서
부스 문 옆에 붙은 전화번호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인감도장. 구두, 열쇠, 칼
그리고 휴대폰 번호가 있다.
다음날 출근길에 부스를 보니
불이 안 켜져 있다.
그날도 또 깜박할까 봐서
전날 본 그 간판의 전화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흰색 부츠 맡긴 사람입니다.
몇 시까지 계시나요?
문자에 1 표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두어 시간 지난 뒤에 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는다.
안 나오셨나?
점심시간에 일부러 구둣방 부스 쪽으로 가보니
불빛이 있기에
"부츠 찾으러 왔습니다" 하며 문을 열었더니
하얀 거요? 하시며 꺼내 주시는데...
고무는 교체되었으나
부츠의 상태는 내가 맡겼을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부츠에 광을 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이왕 주는 것 닦아서 주면
내가 2천 원 안 거슬러 가고 고맙다고 돈을 더 드릴 사람인데
먼지도 안 털고
굽만 교체하셨어요.
시키는 것만 하는 아저씨가
참으로.... 하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부츠를 광내어 닦아 놓고
"지저분해서 제가 닦았어요. 원래는 부츠는 닦으면 6천인데
고무도 갈았으니 5천 원만 더 주세요" 했다면
난 기꺼이 아저씨의 센스에 놀라워하며
6천 원을 다 줬을 텐데..
하루에 몇십 켤레씩 닦아야 하는 바쁜 구둣방이었다면
이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구둣방 위치가
한가하고
또 한가한 곳이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구둣방을 지날 때마다.... 한숨이 난다.
.
.
제발 네 걱정이나 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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