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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왔다.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눈사람도 만들고
그 눈을 치우겠다고 넉가래를 들고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어제 밤사이에 많이 내린 눈 때문에
출근길을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고
누군가 밟지 않은 눈길을 밟으며
오랜만에 뽀드득 뽀드득소리를 들었다
아... 이소리 듣기 좋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나무 위에 쌓인 눈을 카메라에 담았다.
회사부근 아파트 상가 앞에 작업복 차림의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서
플라스틱 넉가래로 눈을 밀고 있다.
약국. 미용실. 화장품가게. 편의점. 빵집...?
그 누구도 아닌 것 같다.
상가 청소용역업체일까?
수고하는 그 두 분에게
"수고하십니다!" 하고 지났고
우리 회사가 있는 길로 들어서는데
테니스장 담장에서 회사 정문까지 통행자들이 밟아서 눌려진 눈이 그대로 있다.
(밟아서 눌린 눈은 잘 밀리지 않는다)
사무실에 올라가 가방을 내려놓고
관리실에 가서 넉가래를 달라고 했더니 본인들이 하시겠다고...
손 하나 보태면 더 빨리 끝나지 않겠느냐고 해서 넉가래를 받아서
도로에 나왔다.
30여분 눈을 치우는 동안
그 길을 여러 명이 지나갔고
그중에는 우리 건물(내 건물 아니다. 우리 회사가 있는 빌딩이니 우리 건물이라 한다)로 들어가는 분들도 많았지만
입을 열어 수고한다고 인사하는 사람은 없었고
길을 지나가는 칠십 넘으신 여성 두 분과 40대의 남자가 "수고하시네요" 하며 인사를 했다.
" 네, 안녕하세요!"라고 기분 좋게 답했다.
늘 그 길을 지나야 만 했던 분들은 아는 것이다.
그 누구도 눈을 치우지 않아서 통행에 불편했다는 것을.
쌓인 눈 덕분에
오십여 년 만에 넉가래로 눈 쓸어봤고
이것도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넉가래 들고 기념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했는데 (ㅋ ㅋ )
지나는 사람에게 찍어달라기 쑥스러워
눈 치워진 도로만 사진으로 남겼다.
20240222 나에게 '참 잘했어요' 칭찬스티커 한 장 투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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