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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후 벧엘관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박권사님께서 가방을 열어 쿠킹포일로 싸고 비닐에 담은 떡 한 덩이씩을
우리 구역식구들 모두에게 돌렸다.
매일 새벽이면 새벽기도를 위해 5시 30분에 일어나시는 권사님은
그날은 약식을 하느라 5시에 일어나셨고
떡 때문에 그날은 새벽기도도 짧게 하셨고
본 예배시간에는 졸기도 하셨다고 떡을 주면서 말씀하셨다.
독일 유학 중인 당신의 손자가 석사과정을 무난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86세 할머니의 기도는 멈추지 않고 있는데
마침 교회에 중보기도회가 생겼으니
늘 기도하는 권사님이 그 모임에 빠질 리가 없다.
11시에 주일예배 전인 10시에 중보기도회가 있는데
나는 그 시간에 교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맡은 일이 따로 있어서 기도회에는 참여할 수 없기에
몇 분이나 모이느냐고 권사님께 여쭈었더니 권사님까지 8명이란다.
권사님의 새벽기도는 당신을 위한 기도만 하시는 게 아니다
우리 구역식구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이웃과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하신다.
그래서 교우들 뿐만 아니라 그 가정의 자녀이름까지도 쫙 꿰고 있는 분이시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그에 맞는 기도를 해 주시느라
우리 가족 이름도 막힘없이 부르신다)
권사님은 새벽이면
교우들의 가정을 위해 기도를 당연한 듯하시면서
중보기도회분들이 당신의 손자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 표시로
약식을 하셨다니, 고마운 것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분이다.
교회에 오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권사님은
당신의 전기밥솥이 작아서 약식을 하기 위해 밥을 여러 번 하셨단다.
권사님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떡을 먹을 때마다 감사기도를 하게 된다.
나는 권사님의 약식을 수도 없이 많이 먹어봤다.
무슨 날이 아니어도 권사님은 새벽에 만들어 따뜻한 온기가 있는 약식을
종종 내 가방에 슬그머니 넣어 주셨다.
그날 약식을 받으신 우리 구역 권사님들은
당신들이 다 해봐서 그 수고로움을 아시는지라...
"고맙다"라고 "잘 먹겠다"라고 "우리까지 주느냐고 새벽부터 수고를 하셨다"라고
여러 가지 말로 인사를 하는데
87세 C 권사님께서 " 얼마나 많이 했으면 우리까지 주느냐!"라고
떡을 많이 해서 남아서 준다는 식의... 뻔대 없는 말을 하셨다.
헐~
내가 나서서 " 권사님,... 많이 해서 드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 구역식구들까지 주시려고 많이 하신 거예요!"
절대 남아서 주는 게 아니다.
작은 밥솥에 여러 번 하시느라 얼마나 수고를 하셨겠는가.
정작 박권사님 댁에는 떡 한 덩이 안 남기고
모두 가져와서 나눴다는 것을.. 나는 짐작으로 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박권사님은 그랬을 분이시다.
우리 구역식구는 모두 7명.
나와 구역장 빼고 모두 80대 어르신들이다.
그분들 눈에... 난 완전 애다.
날 보면 맨날 이쁘다 이쁘다 하신다.
그 말뜻을 나도 안다.
나도, 나보다 젊은것들이 이뻐 보이니까!
팔십 넘으신 권사님들께서
교회에 잘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저게 축복이구나.. 한다.
팔십 너머까지 내가 살아 있으려나
나도 약식을 해서 우리 구역식구들과 나눌 수 있으려나
저 권사님들처럼 걸어서 교회 다닐 수 있으려나.
떡 말고... 다른 것으로 나누는 게 좋겠어요.
떡은 우리 작은언니가 잘하고
카스텔라는 큰언니가 잘하고
저는,.... 여우짓을 잘해요!!!
20240323 하루하루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에, 그게 나네 하며 살고 있는 커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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