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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쉬고 출근한 7일이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점심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11시 20분 대표 방에 들어가서
"강마을 다람쥐 갑시다" 했더니
도시락 가져왔다고.
나도 봤다.
냉장고에 반찬통 넣어 둔 것.
"오늘 제 생일입니다"
아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놓으면 뭐하나 하고 혼잣말을 하신다.
20분 후에 나가도 될까요?
그래 봐야 40분이니까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이 아닌 점심 먹으러 먼 곳에 나들이 가는 길에 보이는 나무와 도로가
어찌나 싱그럽던지...
이래도 없고
저래도 없는데
놀며 쉬며 일하자고
우리가 점심 한 끼 제대로 먹었다고
그것 때문에 더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태 이 간단한 것을 몰라서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여유라는 것을 즐겨본 적 없었으니...
거기를 목적지로 정한 것은
엄마가 해준 도토리묵밥을 워낙 좋아했기에
똑같은 맛은 아니더라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묵밥을 먹고 싶어서였다.
세상 참 세련된 것이
식당 앞에 기기 하나 놓고
인원과 휴대전화 번호로 접수하면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외식을 안 해서 이런 기기 처음 봤다)
그런데 이게 뭔 숫자
대기번호 77번
앞에 36팀이 있다고.
공터에 별도로 마련된 주차장도 만차라서 돌고 돌다가 주차하고
12시 50 분에 도착하여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선 게
2시 30분.
세상 밥 먹자고 그렇게 기다려 본 것은 난생처음
내 생일이 아니었다면 대표는 다른 데 가자고 했을 것인데
군말 한 마디 안 해서 신기할 정도였다는.
배는 고플 만큼 고프고
사무실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로 목을 축여가며 기다렸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7~8년 만에 다시 와 본 것 같은 식당은
좀 더 세련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밖의 정원도 더 정돈되었고
강이 시원하게 보이고
꽃들과 텃밭의 채소 등을 보는 것으로 50점은 이미 획득한 음식점이다.
여기저기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화보를 찍고 있어서
나는 꽃 사진을 찍고 인물 사진 몇 개 부탁했더니
빛 때문에 잘 안 보인다며 대충 찍은 사진은
모델도 그렇고 사진작가도 그래서
건질만한 사진 한 장이 없어서 올릴 수 없다.
도토리 묵밥 따뜻한 것과
도토리 새싹비빔밥, 그리고 도토리 전을 시켰더니
계란 지단처럼 얇게 부친 전이 나왔다.
깨 바구니를 들고 가다 전 앞에서 엎어졌는지
깨 천지다.
고소하고 식감 좋은 전을 먹고 있으니
이어서 밥과 묵밥도 나왔다.
열무 몇 가닥 집어먹고
그릇 속에 묵 찾아 먹기를 했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계산대에 앞에서 4개 들어있는 쿠키를
4천 원씩이나 내고 샀다.
이런 날 아니면 비싸다고 안 사 먹는 것들이다.
주차장에서 음식점까지 200미터가 넘는 데
그 길가에 천막을 쳐놓고 상추를 파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셔서
3천 원 하는 모둠 상추를 두 분께 한 봉지씩 샀다.
한 사람에게 다 사면 다른 한 분이 섭섭할까 봐서.
나중에 산 아주머니는
뒤에 있는 넓은 바구니에서 상추를 더 내어 봉지에 담아주신다.
어제 그 상추에 쌈장과 참치캔 하나 따서 점심을 먹는데
와우... 그 집의 도토리 묵밥과 비교할 수 없이
끝내주게 고소하고 부드러운 상추여서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그 집에 밥 먹으러 갈 게 아니라
상추 사러 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주차장에서 음식점 가는 길. 상추 파시는 분 그 옆에서 옥수수나 옥수수빵
냉차, 냉커피를 팔아도 팔릴 것 같았다.
상추 한 봉지는 집으로 가져갔더니
이렇게 맛있는 상추는 마트에 없다며
길거리 할머니들이 파는 상추라고.
한 봉지에 3천 원 이랬더니 엄청 싸게 산 것이라고.
점심 저녁으로 상추쌈을 먹으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사 올 것을
냉장 보관하면 7일 이상 간다는데...
상추 파는 장소 바로 아래에 상추 밭이 있던데...
다음에 가도 있을까?
묵밥을 먹으러 다시 갈까?
안 간다.
샌드위치와 커피 싸들고 가서 여기저기 있는 벤치에 앉아서 먹고
상추만 사 가지고 온다에 1표!
2시간마다 체크하는 화장실이 깨끗하고 예뻐서 50점 더 준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눈에 들어오는 것들에 두리번두리번.
여기가 미사리인데 많이 바뀌었네.
저 건물은 뭐야?
하남 스타필드네!. 신세계도 있네!
<미사 경정공원> 표지판을 보이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미사리 끝인 것 같은데...
카페촌은 다 어디 갔지. 아까 보니 윤시내 카페는 있던데..."
저기 저 앞에 무슨 병원이라고 쓴 거예요 하고 대표가 외친다
서울** 요양병원요!
우리 눈에는 병원 간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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